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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문화 속 리비아 전통의 독창성 (예술, 언어, 종교)

by 동글나라 2025. 4. 9.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아랍국가로, 중동 및 마그레브 지역 국가들과 문화·종교·언어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적 기반 위에서도 리비아는 역사적 배경, 지리적 고립성, 부족 중심의 사회 구조, 그리고 전통을 중시하는 문화적 정체성을 통해 독자적인 문화 세계를 형성해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랍문화의 흐름 속에서 리비아가 어떻게 예술, 언어, 종교 실천에서 독창적인 문화적 특성을 지켜왔는지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합니다.

1. 아랍문화 속 리비아의 독창적인 예술

리비아의 전통 예술은 아랍문화권 내에서도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미적 표현을 넘어, 리비아 사회의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된 공동체 중심의 실천예술이라는 점에서 그 차별성이 두드러집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UAE 등 많은 아랍국가에서는 왕실 후원이나 도시 귀족 문화에 기반한 시각 예술과 공연 예술이 주류를 이루지만, 리비아는 예술이 부족 내부의 생활과 의례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대표적인 예가 민속 무용입니다. 리비아의 전통 무용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알 아르다(Al Ardha)’는 여러 명의 남성이 줄을 지어 서서 북과 피리의 리듬에 맞춰 동작을 맞추는 집단무용입니다. 이 무용은 결혼식, 추수 축제, 부족 회의와 같은 공동체 중심의 행사에서만 진행되며, 그 형식이나 순서는 철저히 전통 규범에 따릅니다. 이는 공연보다는 일종의 사회적 예식이자 공동체 연대 확인 행위로 기능합니다.

음악 역시 매우 독립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파(Zaffa)’는 리비아 혼례에서 신랑이 등장할 때 연주되는 전통 음악 퍼레이드로, 북, 나이(전통 플루트), 간혹 피리와 탬버린이 조합된 단출한 악기로 구성됩니다. 자파는 리듬이 빠르고 반복적이며, 일정한 박자에 맞춰 남성들이 전통 복장을 입고 행진합니다. 이러한 음악은 외부에서 수입된 멜로디나 현대 악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으며, 전통적인 악기와 구전된 선율을 통해만 전승됩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리비아에서 예술의 전수 경로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대 교육 시스템이나 예술학교가 아닌, 가정과 부족 내부의 세습 구조를 통해 예술이 전해진다는 점은 중동 내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남성은 할아버지나 부족 원로에게서 악기 다루는 법과 노래를 배우고, 여성은 어머니나 숙모에게서 자수 문양, 의복 제작법, 춤 동작을 전수받습니다.

시각 예술에서는 금속 세공, 천 염색, 은 장신구가 중요한 전통 장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결혼식이나 의례 행사에 착용하는 목걸이, 팔찌, 이마띠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종교적 보호, 부족 소속, 신분 상징의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장신구는 대부분 수제이며, 각 문양에는 행운, 번영, 다산 등의 기원이 담겨 있습니다.

공예 또한 실용성과 심미성이 결합된 형태로 발전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리비아식 양탄자와 천 직조 문화입니다. 베르베르 전통에서 유래된 문양과 색상을 중심으로 천이 짜이며, 실내 장식뿐 아니라 결혼 선물, 아이 출산 축하품 등 의례적 목적에서도 활용됩니다. 이는 리비아 예술이 단지 ‘장식’이 아닌, 삶의 주요 순간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처럼 리비아의 전통 예술은 아랍문화권 내의 ‘예술의 탈종교화, 개인화’ 경향과는 달리, 공동체성, 신앙, 실용성이 융합된 고유의 구조를 여전히 강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리비아 예술의 뿌리가 단지 미학적 표현이 아닌,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질서의 재현 수단이라는 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언어 보존과 방언의 문화적 자산화

리비아는 공식 언어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구어는 리비아 다리자(Libyan Darija)로 불리는 독특한 방언입니다. 이 방언은 고전 아랍어(Fusha)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이탈리아어, 베르베르어, 터키어, 스페인어 등 여러 언어의 흔적을 담고 있어 중동권 대부분의 국가 방언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리비아 다리자는 지역에 따라 어휘와 억양이 매우 다양합니다. 트리폴리 지역은 과거 이탈리아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마카리나(Macarina, 파스타)’, ‘바니오(Bagno, 욕실)’ 등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이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동부 벵가지 지역은 이집트와의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이집트 방언과 유사한 표현이 많고, 남부 사막지대에서는 베르베르어 계열 단어와 음운이 두드러지며, 말의 리듬도 완전히 다릅니다.

이 방언은 글로 쓰이지 않는 순수한 구술 언어로 전해지며, 문어체와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 특히 가족 내 대화, 시장 거래, 민속 예술(예: 민요, 속담, 시)에서는 다리자가 거의 유일하게 사용되며, 이러한 특성 때문에 리비아 다리자는 문화 보존의 핵심 도구로 간주됩니다. 이는 아랍권 일부 국가에서 방언을 ‘비표준’ 또는 ‘저급 언어’로 간주하는 경향과는 대조적입니다.

리비아 사회에서는 다리자 사용이 정체성의 핵심으로 여겨집니다. 자신이 어떤 지역 출신인지, 어느 부족에 속하는지를 말의 억양과 단어 선택에서 드러내며, 이를 통해 공동체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망이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특정 문장을 통해 상대방의 출신 지역을 알아채고, 그에 맞는 존댓말과 예절을 즉시 적용하는 문화가 존재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몇 년 사이, 다리자가 새로운 형태의 문화 콘텐츠 생산 수단으로 재조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젊은 층은 다리자를 활용한 소셜 미디어 콘텐츠, 랩 가사, 유머 영상을 제작하며, 기존의 구술 문화가 디지털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튜브, 틱톡,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지역 특유의 억양과 표현을 살린 영상들이 확산되며, 다리자는 다시 한 번 리비아인의 ‘문화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고전 아랍어가 주요 언어로 사용되지만, 일부 문학 연구자나 작가들은 다리자를 문자화하고 기록하려는 시도를 진행 중입니다. 이는 단순한 언어 보존을 넘어서, 리비아인의 일상적 감정, 기억, 농담, 서사를 언어로 고정시키려는 문화적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리비아는 아랍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면서도, 방언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문화적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드문 사례입니다. 이는 아랍권 내에서 ‘언어’가 정체성과 문화의 중심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3. 수피 전통과 부족 신앙이 공존하는 종교 문화

이슬람 수니파 국가로서의 리비아는 아랍문화권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근간으로 한 종교 실천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리비아의 종교 문화는 수니파 내에서도 수피즘(Sufism)과 부족 신앙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어 중동 타국과 차별화됩니다.

수피즘은 이슬람의 신비주의 전통으로, 신과의 내면적 교감을 중시하고 음악과 춤, 시를 통한 영적 체험을 강조하는 신앙 실천입니다. 리비아에서는 이 수피즘이 일부 지역, 특히 서부와 남부 내륙 지역에서 여전히 실천되고 있으며, 왈리(Wali, 성인)의 무덤을 순례하거나, 성인의 기일에 마을 잔치를 열고, 특별한 기도를 올리는 관습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문화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와 같이 와하비즘(엄격한 이슬람 해석)이 지배적인 국가에서는 거의 금기시되는 행위지만, 리비아에서는 수피 전통이 이슬람 이전의 부족적 제의문화와 결합되며 지역 정체성의 일부로 살아남았습니다. 마을마다 특정 성인의 이름을 딴 무덤이 있고, 그 주변에는 시장, 샘, 나무가 함께 있어 공동체의 상징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종교행사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라마단이나 희생제(이드 알아드하) 같은 대이슬람 행사 외에도, 리비아에서는 지역 성인의 탄신일이나 사망일을 기념하는 마을 차원의 소규모 축제가 자주 열립니다. 이때는 북을 두드리며 집단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고, 공동 식사를 통해 마을 전체가 함께 경건함과 즐거움을 나누는 전통이 이어집니다.

또한 리비아는 이슬람 실천에서 가정 중심 종교 교육이 매우 활발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 할머니에게 꾸란을 배우고, 부족별 예배 방식, 자카트(자선), 금식의 의미 등을 자연스럽게 가정 내에서 체득합니다. 이는 중동의 대도시권에서 교육 기관 중심의 이슬람 교육이 일반화된 것과 달리, 가정과 공동체 중심의 종교 전승이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되는 리비아의 특징입니다.

결론적으로, 리비아의 종교 문화는 이슬람 정통성과 함께 신비주의, 공동체 의례, 부족 신앙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복합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아랍문화 내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독립적 신앙문화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